-이제는 어엿한 단국대 공격수 ,포르투갈 찍고 대입 두 번, 원지식의 산전수전

  • 강대희 기자
  • 발행 2021-09-30 11:34
  • 104


“또다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데요?”



힘든 상황이 다시 오면 어쩌냐는 질문에 단국대 원지식은 이렇게 답했다. 대학 진학 실패, 포르투갈 3부리그 팀 입단,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돌아온 한국, 신생팀 여주대를 거쳐 단국대에 오기까지. 고작 만 22세 대학생 축구선수가 겪기엔 너무나도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축구를 그만둘 생각으로 한국에 왔고, 실제로 8개월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다. 한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를 누렸지만, 마음 한편에는 ‘축구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던 중 여주대 최기봉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원지식은 여주대 축구부 창단 멤버로서 축구를 다시 시작했다.



2년제 전문대인 여주대를 거쳐 올해 단국대 3학년으로 편입한 원지식은 U리그 5권역 8경기 6골로 팀 내 득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원지식은 2021 U리그 개막전과 2라운드서 모두 멀티골을 넣으며 단국대에 승리를 안겼고, 제57회 백두대간기 추계대학축구연맹전 16강 인천대와의 경기에서도 역전골을 넣으며 팀을 승부차기까지 이끌었다.



어린 나이에 산전수전을 겪으며 축구를 한 원지식은 “그냥 끝까지 해보려고요.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라는 다짐을 말했다. 이는 이미 많은 일을 겪었고, 이제는 어떠한 현실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인터뷰 내내 밝고 쾌활한 모습을 보인 원지식이지만, 다짐을 말할 때는 진지함이 한껏 묻어났다.



순탄하지 않았던 청소년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방과 후 활동으로 축구를 처음 접한 원지식은 우연히 김포의 명문클럽 이회택축구교실 선수들과 연습 경기를 하게 됐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운 선수들과 처음으로 붙어본 경기에서 참패를 맛보자 원지식은 어린 마음에 오기를 품었다. 그는 “너무 크게 지니까 자존심이 상했다. 그 친구들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 클럽에 들어가서 축구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며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시작은 순탄했다. 입단한 지 몇 개월 만에 원지식은 팀의 주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고, 졸업 후에는 서울문래중에 입학해 실력을 키웠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협회장기 대회에서 FC서울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서울오산고(FC서울 U-18)행을 미리 확정 지었다.



그러나 순탄할 것 같았던 원지식의 축구선수 생활은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다. 입학하기 1년 전부터 오산고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들어가서는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지식은 “그때 축구가 잘 안됐다. 그리고 코치님도 갑자기 바뀌셔서 그런지 잘 안 맞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원지식은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원지식은 경기를 더 많이 뛸 수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경기에 나서지를 못해서 많이 힘들었다. 근데 마침 초등학교 때 감독님이셨던 윤종석 감독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얘기가 잘 돼서 그쪽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며 서울장훈고로 가게 된 이유를 밝혔다.



새로운 길을 찾은 원지식은 장훈고에서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경기 감각을 끌어 올렸다. 그는 “프로 산하 팀에 있으면 아무래도 프로팀과 비슷하게 훈련하는 게 있다. 그런데 학원축구는 그런 게 없다 보니까 좀 더 자유롭게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더 편하게 축구를 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원지식은 졸업 후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하며 또 다른 위기를 만나게 된다.



기회를 찾아서, 포르투갈로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지만 원지식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며 기회를 찾았다. 그러던 중 원지식에게 우연히 포르투갈 팀 입단 공개테스트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대학은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포르투갈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축구는 계속 하고 싶은데 그 당시에 갈 수 있는 팀이 없으니까, 그냥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바로 (포르투갈로) 갔다”고 말했다.



기회를 찾아 떠난 포르투갈은 원지식의 생각과 달랐다. 아나디아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3부리그 팀은 한국 고등학교 팀보다도 상황이 열악했다. 지원이 잘 되지 않아 원지식의 사비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고, 말이 통하지 않아 축구를 배우기도 힘들었다. 원지식은 “막상 가보니 생각이랑 너무 달랐다. 지원도 안 되고, 밥도 혼자 처음 해먹고, 식단도 안 맞고, 말도 안 통하니까 너무 힘들었다. 인종차별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지식에게 발목 부상까지 찾아왔다. 이로 인해 원지식은 시즌 초반부터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간 오로지 축구 하나만 보며 힘든 타국 생활을 버티고 있던 원지식은 축구까지 못 하게 되자 크게 동요했다. 그는 “시즌이 4월에 시작하는데, 시즌 시작 전에 크게 다쳐서 경기를 뛸 수가 없었다. 원래는 거기서 치료를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생활도 너무 힘들고 발목까지 다치니까 축구까지 싫어졌다. 그냥 다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를 밝혔다.



평생 하던 축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자 주위에서는 원지식을 설득했다. 같은 포르투갈 팀에 있던 한국인 동료 두 명과 원지식의 부모님이 그를 설득했지만 이미 굳어진 원지식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형들이 엄청 말렸다. 근데 상황이 많이 열악한 것을 아니까 나중에는 이해해주셨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하시다가 나중에는 그냥 돌아오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결국 큰 꿈을 안고 시작한 원지식의 포르투갈 생활은 부상으로 인해 3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8개월 만의 그라운드 복귀



한국에 돌아와서 원지식은 그간 즐기지 못했던 자유를 누렸다. 그는 친구들과 스무 살을 즐기며 푹 쉬었다. 그러나 원지식의 마음 한편에는 축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같은 학교 출신 친구들이 대학생 축구선수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원지식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대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대회 나가서 찍은 사진이 핸드폰에 계속 보였다. 그런 걸 보면 축구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원지식의 마음이 흔들리던 찰나, 마침 그를 오산고로 데려갔던 최기봉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생팀 여주대의 감독을 맡게 된 최기봉 감독은 원지식에게 창단 멤버로 들어오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원지식은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주저 없이 가겠다고 했다. 사실 감독님께 연락이 왔을 때 엄청 좋았다”며 웃었다.



신생팀인 데다 2년제 전문대라는 점은 마음에 걸렸다. 그간 꽤 이름 있는 팀에서 뛰었던 원지식에게 신생팀은 생소했다. 그는 “처음에는 너무 지기만 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가니까 친구들이 잘 해줬다. 그래서 괜찮았다”고 밝혔다.



8개월 만에 다시 밟은 그라운드가 어색할 법도 했지만 원지식은 그렇지 않았다. 남들보다 한 살 늦게 대학 생활을 시작한 원지식은 금방 적응하며 팀에 녹아들었다. 그는 “들어가기 전에 개인 운동을 하고 들어간 덕분에 쉽게 적응했다. 다시 몸을 만드는 건 조금 힘들었다”고 말했다.



원지식은 창단 첫해 U리그 4골을 기록하며 여주대의 최다득점자로 꼽혔고, KBSN배 1, 2학년 축구대회 16강에서는 아주대를 상대로 2도움을 기록하며 여주대의 8강 진출을 도모했다. 2학년 때는 전년도 U리그 8위였던 여주대를 6위까지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만족스러운 2년을 보낸 원지식은 “우리가 다른 팀보다 약하기 때문에 수비하다가 역습으로 공격을 풀어나가는 법을 배웠다. 기술이나 전술도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이제는 어엿한 단국대 공격수



여주대를 졸업한 원지식은 다시 막막한 상황에 직면했다. 졸업을 했는데 갈 수 있는 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포기해야 하나 싶었던 찰나에 단국대 편입 제의가 들어왔다. 원지식은 “여주대 시절 나간 대회에서 단국대와 만난 적이 있다. 박종관 감독님이 당시에 코치님이셨는데, 그때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연락이 오셨다. 막막하던 때에 단국대에서 연락이 와서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간 미드필더로 경기에 나섰던 원지식은 단국대에서는 공격수로 뛰며 팀의 득점을 도맡았다. 원지식은 현재 U리그 5권역 6골로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감독님이 나를 공격수로 쓸 생각으로 데려오신 것 같다. 여주대에서는 골을 많이 못 넣었는데, 단국대에선 두 경기 만에 4골을 넣어서 기분이 좋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원지식은 대회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추계연맹전 16강에서 인천대를 상대로 역전골을 넣으며 팀을 승부차기까지 이끌었다. 비록 승부차기에서 패하긴 했지만 원지식은 이 경기를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으며 “0-2로 지고 있다가 3-2로 역전했다. 근데 역전한 후로 방심해서 동점골을 내어준 게 아쉬웠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고 경기 내용도 좋았기 때문에 더 아쉽다”고 말했다.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



이른 나이의 타국 생활, 벌써 여러 번 겪은 실패의 아픔에도 원지식은 포기하지 않았다. 원지식에게 포기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었을 뿐, 그는 곧장 그라운드로 돌아와 경기를 뛰었다. 힘들 때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동력으로 그는 어머니를 꼽았다.



원지식은 “엄마랑 엄청 친하다. 축구를 그만 두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안 그런 척 하면서 엄청 아쉬워했다.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땐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더라. 지금도 매일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매일 잘하고 있다, 열심히 하라고 말해준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또다시 어려움이 찾아오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원지식은 웃으며 답했다. 그는 “또다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지금도 포기하려다가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단국대라는 좋은 팀에 올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일단 끝까지 해볼 것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라는 다짐을 보였다. 단국대 3학년인 원지식은 아직 1년의 대학 생활이 남았음에도 “올해를 끝으로 프로에 진출하고 싶다”며 “어느 팀에 있든지 꼭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덧붙였다. 

<저작권자 ⓒ 스포츠아웃라인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대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