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선수 최초 중등 임용시험 합격’...오태환의 처절한 합격수기

  • 정상훈 기자
  • 발행 2021-02-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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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축구협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값진 선물이다.



2017년부터 전주시민축구단에서 뛰고 있는 오태환은 최근 전라북도교육청에서 실시한 2021학년도 공립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현직 축구선수가 임용시험에 합격해 교사가 된 건 오태환이 처음이다.



제주서초-제주제일중-제주오현고를 거쳐 2013년 전주대 축구학과에 입학한 오태환은 학교 졸업 후 전주시민축구단에 입단해 첫 해부터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찼다. K3리그, FA컵, 전국체전 등 굵직한 대회에서 필요할 때 공격포인트를 올리며 팀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2019년 K3리그 베이직 정규리그에서는 18경기 출전에 12골을 기록하며 팀 동료 김상민과 함께 팀 내 최고 득점을 기록, 전주시민축구단의 2위에 크게 기여했다.



가능성을 보이며 팀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지만 오태환은 축구선수로서의 성공보다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바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막연하게나마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꿈은 있었어요. 그게 축구가 될지 아니면 다른 분야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요.”



축구선수 이후의 삶을 생각한 오태환은 전주대 졸업 후 동 대학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그와 같은 학교에 다녔던 동문이 “(오)태환이는 축구를 워낙 잘해 프로에 갈만했다”고 말할 정도로 프로 선수로서의 성공 가능성도 높았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교사였다.



“교육대학원에 진학할 당시만 해도 제가 교사가 될 거라는 생각은 잘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2019년 7월 전주시청 스마트시티과에서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한 뒤 이 시간을 조금 더 발전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임용시험 준비를 결심하게 된 것 같아요.”



[사진=대한축구협회]


“시간을 ‘나노 단위’로 쪼갰죠”

중등교사 임용시험은 1차, 2차로 나눠 진행된다. 1차 시험에는 교육학과 전공과목을 치르고, 2차 시험은 면접, 수업 실연, 실기 등이 이뤄진다. 1차 시험부터 암기해야 할 양이 상당하다. 대학원 졸업 후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회복무요원이 된 오태환은 그야말로 근무시간을 쪼개고 쪼개 공부에 임했다.



“일단 저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근무를 해야 해요. 9시까지 출근이지만 항상 아침 7시에서 7시 반 사이에는 출근을 했죠. 일찍 출근해 그 날 제가 해야 할 업무를 미리 한 뒤 퇴근하기 전까지 업무 보조를 하지 않는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공부를 했어요.”



“밥을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점심시간이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이라고 하면, 구내식당에는 12시 20분쯤 내려갔죠. 그 때쯤 가야 줄이 길지 않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빨리 밥을 먹고 와서 잠깐 쉬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했어요. 퇴근하고 나서는 밤 12시까지 공부를 계속 이어갔고요.”



오태환은 지난 시즌 K3리그 개막전 당시 종아리 파열로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상으로 인해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났다. 그는 남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매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시간을 정말 나노 단위로 쪼개서 공부를 했어요. 하루 계획표를 짜는데 일단 쉬는 시간 없이 빡빡하게 공부 스케줄을 짜놓고 그대로 따랐죠. 물론 중간에 힘들면 5~10분 정도 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집중했습니다. 지인들에게도 제 계획표를 보여주면서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려고 했어요.”



공부? 원래는 안 친했는데...

이 모든 과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1차 시험에는 교육학과 전공과목을 봐요. 교육학은 물론이거니와 전공과목도 쉽지 않아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주말리그가 도입됐는데,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주중에 대회가 많다 보니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죠. 도저히 학업을 따라갈 수 없었어요. 대학교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학업에 그렇게 매달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교재도 필통도 잘 안 가지고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임용시험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도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에 집중해야하는지 등의 기본 지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에 임용시험을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솔직히 그 때만 해도 막막했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몰랐었거든요. 다행히 저희 구단에서 저보다 앞서 임용시험에 합격한 선배가 한 명 있었어요. 지금 강경상고에서 체육교사를 하고 있는 조성문이라는 형인데요. 이 형은 저랑 같이 전주시민축구단에서 뛰다가 은퇴를 하고 공부를 시작한 케이스인데, 이 형한테도 많은 조언을 받았어요. 큰 도움이 됐죠.”



하지만 결국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주변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된 건 맞지만, 길고 긴 싸움을 해야 하는 건 오태환 자신이었다. “어쨌든 제 방식대로 공부를 이어나가야 하잖아요. 초반 3~4개월은 이렇게도 공부해보고 저렇게도 공부해보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나한테 맞는 방식이 어떤 건지 고민하다보니 스트레스도 상당히 받았던 것 같아요.”



오태환은 인터넷 강의와 독학을 병행하면서 감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전공이 체육교육이다 보니 생리학, 역학 등을 공부해야 하는데 이게 암기해야 할 내용이 정말 많거든요. 기초가 잡혀있지 않으면 공부하기 어렵죠. 독학으로는 이 시험을 끝까지 준비하기 힘들어서 우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기본을 잡아나갔어요. 인터넷 강의는 사범대 나온 친구들도 무조건 듣습니다.”



“교육학의 경우에는 기초 이론 강의를 인터넷으로 들은 후에 독학으로 나머지를 공부했고 전공과목의 경우 인터넷 강의를 1년 패키지로 끊어서 기본 이론 강의와 모의고사까지 쭉 들어나가며 공부했어요. 단순히 강의만 들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스스로 복습도 해야 하기에 때문에 거의 독학으로 한다고 보시면 맞을 것 같습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오태환은 ‘두 번은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용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간절함이 합격의 큰 원동력이 됐다.“진짜 힘들었어요. 처음엔 2년을 생각하고 이 시험을 준비했지만 1년을 해보니 이걸 또 하기 싫더라고요(웃음). 그 마음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스트레스 해소도 수험 생활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었다. “주중에는 되도록 쉬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주말에 하루는 무조건 쉰다고 하던데 저는 그것도 잘 되지 않더라고요. 기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험 준비를 했기에 항상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죠.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어요. 너무 힘들 때는 카페를 가거나 드라이브를 했어요. 전주를 조금만 벗어나도 리프레시 되는 기분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대전에 친누나가 살고 있어서 대전에 오가기도 했고요.”



선한 영향력 주는 교사 되고파

1차 시험이라는 큰 산을 넘은 후에는 2차 시험인 실기, 수업 실연,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사장은 크게 구상실과 면접실로 나눠져 있어요. 구상실에 들어가면 파일이 있는데 그 파일을 열면 총 네 가지의 질문이 담긴 질문지가 들어있죠. 구상형 세 문제와 즉답형 한 문제가 있는데 구상형 문제의 경우 구상실에서 10분 동안 답을 구상할 수 있어요. 펜을 사용해 적을 수도 있고요. 즉답형은 상황만 주어져 있고 구체적인 질문은 없어요.”



“10분간의 구상을 마치면 면접실로 들어가 면접관들에게 답을 이야기하죠. 구상형 질문을 모두 말하고 나면 즉답형 문제에 대한 세부질문을 확인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바로 해요. 즉답형 질문은 펜을 사용할 수 없고 머릿속으로 정리해야 이야기해야 합니다.” (* 면접, 수업실연, 실기 등은 지역마다 시험 방식이 다를 수 있음)



모든 걸 마치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시간도 오태환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수업실연은 첫 번째, 면접은 세 번째로 봤어요. 고사장에서 대기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고, 빨리 보고 나왔죠. 고사장에서 나온 직후에는 홀가분하더라고요. 나름 잘 본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는 생각에 후련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2차 시험은 1차 시험에 합격해야 볼 수 있어요. 저는 1차 시험 점수가 꽤 높게 나온 거왔죠. 가산점을 제외하고도 합격 기준 커트라인보다 12점이나 높게 나온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커트라인보다 10점 이상 높으면 무조건 안전하다고, 미리 축하한다고 그랬는데 전 어떻게 해도 안심이 되지 않더라고요(웃음). 왠지 나한테는 이변이 생길 것 같고, 꼭 내 앞에서 결과가 뒤집힐 것 같은 불길한 느낌 있잖아요. 그런 기분이 계속 들어서 불안했어요. 최종 합격자 발표까지 2주 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동안 악몽도 꾸고 잠도 계속 설치면서 그야말로 꾸역꾸역 지낸 것 같습니다.”



처절한 노력 끝에 얻은 합격이란 선물은 오태환에게 있어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는 교사뿐만 아니라 축구선수라는 타이틀도 놓치지 않고 함께 품고 나갈 작정이다. 자신이 이룬 값진 결과가 후배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저는 교사가 되어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하고 싶습니다. 현재 K3리그나 K4리그를 보면 축구만 바라보고 재기를 노리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저의 사례가 또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이 길을 잘 닦아놔야 후배들이 저를 보면서 진로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폭넓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나 다른 꿈을 가지고 있지만 도전을 망설이는 선수들이 있다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오태환은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지도자, 선생님들을 만나왔는데 돌이켜봤을 때 내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저를 따를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학생들에게 친근감있게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태환은 인터뷰 말미에 이 말을 꼭 덧붙여달라고 했다. “올해 5월까지 전주시청 스마트시티과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는데, 이분들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임용시험 합격이 결코 쉽지 않았을 거예요. 과장님을 비롯한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이분들 옆에서 일하면서 저도 책임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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