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3리그 박청효는 다시 K리그를 꿈꾼다

  • 강대희 기자
  • 발행 2021-08-21 09:38


“인터뷰가 너무 떨립니다” 승부차기에서 팀을 승리로 이끈 베테랑 골키퍼는 생방송 인터뷰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3부리그 팀의 디펜딩 챔피언 격파, 그 중심에 서 있던 선수가 보여준 ‘반전 매력’은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바로 양주시민축구단 골키퍼 박청효의 이야기다.



2021 하나은행 FA CUP 16강의 가장 큰 이변은 양주시민축구단의 ‘자이언트 킬링’이었다. 박성배 감독이 이끄는 양주시민축구단은 FA CUP 디펜딩 챔피언이자 K리그1 ‘절대1강’ 전북현대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8강에 올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이변이었다.



이변의 중심에는 양주의 골문을 지킨 박청효가 있었다. 박청효는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전북의 맹공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승부차기에서는 한교원의 킥을 막고 팀의 11번째 키커로 직접 킥을 성공시킨 뒤 상대 골키퍼 이범영의 킥을 막아내 경기를 끝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2013년 경남FC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박청효는 190cm 장신으로 안정감과 정확한 킥력이 장점인 골키퍼다. 경남과 충주험멜, 수원FC에서 4시즌간 26경기 출전에 그쳐 K리그에서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2016년 강릉시청에서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하고 K3리그 어드밴스 포천시민축구단에서 두 시즌 연속 팀의 챔피언십 진출에 기여하는 등 하부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양주의 홈구장 고덕생활체육공원 축구장에서 만난 박청효는 스스로 “내성적이고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며 여전히 인터뷰는 쉽지 않다고 웃었다. 하지만 자이언트 킬링과 프로 무대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확신에 찬 눈빛을 보였다. 조용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골키퍼의 모습이었다.



-이미 많이 이야기했겠지만 전북전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습니다. 경기 준비과정은 어땠나요?

사실 큰 부담 없이 준비했어요. 팀 전체가 ‘이기자, 좋은 결과를 내자’ 보다도 ‘최선을 다해서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내자’는 생각으로 뭉쳤던 것 같습니다. 리그 중에도 전북에 대비한 훈련도 많이 진행했고요.



-경기중에 120분 내내 전북의 맹공이 이어졌습니다. 막아야 했던 골키퍼의 입장에서 어떤 느낌이었나요?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었어요. 그만큼 경기 자체에 대한 집중력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우리 수비 모두가 그 정도 집중력으로 경기에 임한 덕분에 무실점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승부차기였는데요, 전북의 키커들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하고 들어갔나요?

아니요. 사실 저는 연장 까지만 뛰고 승부차기는 다른 골키퍼가 맡을 계획이었어요. 우리 팀의 권태안 골키퍼가 승부차기에 굉장히 강해서 지난 FA CUP 1라운드와 2라운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둘 때도 저는 연장 후반 까지만 뛰고 태안이가 교체로 들어와서 승부차기에서 마무리를 했거든요. 그런데 전북전에는 연장전에서 다리에 경련이 난 선수가 있어서 교체카드를 다쓰는 바람에 교체를 할 수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제가 승부차기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투입이었네요. 굉장히 당황스러웠을 것 같은데요.

부담이 컸습니다. 그동안 태안이가 잘 해줬던 걸 내가 망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120분 동안 잘 막았으니 해볼만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자신감이 생겨서 그랬는지 미리 준비한 것 없이 감으로 예측해서 막았는데 방향을 많이 맞췄고 두 개를 잘 막았죠.



-경기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승부차기보다 인터뷰가 더 떨린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원래 제가 약간 내성적이고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날 이긴 직후라 정신도 없는데 생방송 인터뷰는 처음이라 캐스터의 질문도 잘 안 들리고 정말로 승부차기보다 긴장됐습니다. 그 영상이 뉴스에도 나오고 화제가 되면서 주변에서 많이 놀림도 당했어요. 저는 아직도 그 영상을 못 봐요. 아내가 그 영상을 틀 때마다 제발 꺼달라고 부탁해요(웃음).



-예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축구를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항상 운동장으로 달려가서 축구를 하곤 했어요. 작은아버지께서 그 모습을 보시더니 부모님도 모르게 저를 축구부가 있었던 세류초등학교로 전학시켜서 축구부에 가입시켰어요. 부모님의 반대도 설득해 주셨죠.



-유소년 선수들에게는 골키퍼가 기피 포지션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골키퍼였나요?

처음부터 골키퍼는 아니었어요. 4학년 때 훈련 중에 우연히 형들 슛을 막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코치님 마음에 들었는지 골키퍼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도 그때 골키퍼가 멋있다고 생각해서 바로 한다고 했죠. 이후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운이 좋게 계속 골키퍼 코치님들의 지도를 받아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연세대에서 주전 골키퍼로 U리그 왕중왕전 우승을 두 번이나 차지하고 좋은 평가를 들으면서 경남FC에 입단했습니다. 처음 맞닥뜨린 프로 무대는 어땠나요?

그때는 제가 정신적으로 너무 미성숙했던 것 같아요. 경남에 처음 입단하고 전반기에 10경기 정도 출전 기회를 잡으면서 잘 풀린다는 생각에 자만했어요. 그 이후에 출전 기회를 잃고 나니 다시 올라가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정말 많이 후회되요. ‘한 경기라도 더 나서기 위해 온 힘을 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행히 내셔널리그에 있던 강릉시청에서 뛰면서 리그 MVP까지 수상하며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충주험멜을 거쳐서 강릉으로 갔을 때는 내려올 때까지 내려왔으니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자고 생각했어요. 자세를 바꾸니까 경기력도 좋아지고 결과도 좋아지더라고요. 팀 성적이 따라줘서 MVP까지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상을 수상한 적이 잘 없었는데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다시 프로에 도전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수원FC에서의 두 번째 K리그 도전도 4경기 출장에 그쳐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수원FC에서는 운도 따르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저의 멘탈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출전 기회를 받았을 때 제 실수로 실점해서 진 경기가 있었어요. 그걸 털고 일어났어야 하는데 그 이후 주눅이 들어서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팀 성적이 안 좋아지면서 감독님도 바뀌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면서 더 경기에 나서지 못했죠.



-다음 행선지는 K3리그 포천시민축구단이었습니다. 3년간 뛰면서 성적도 좋았는데요.

처음 포천에 입단할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뛸 수 있는 팀을 찾고 있었는데 포천에 가면 포천시청에서 근무하면서 선수 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포천이 K3리그에서 멤버도 좋았고 팀 분위기와 성적도 좋아서 정말 즐겁게 축구했어요. 챔피언십에서 직접 득점을 기록하는 일도 있었고요. 복무가 끝난 뒤에도 포천에서 한 시즌 더 같이 하자고 제안이 있었고 저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그렇게 편안했던 포천을 떠나 양주로 이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은 다시 한번 프로 무대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러 K리그 팀을 알아봤는데 하부리그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바로 K리그로 올라가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 박성배 감독님이 직접 먼저 연락을 주셔서 같이 하자고 해주셨습니다. 많이 고민했지만 여기서도 제가 발전할 기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K리그 1부와 2부, 디비전리그 개편 이전 내셔널리그와 K3리그, 개편 이후 K4, K3리그까지 각급 리그를 모두 경험했는데 이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나요?

축구 하는 환경이나 여러 조건에서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최상위권에 있는 선수들 몇몇을 제외하면 선수들 개개인간의 실력 차이는 크지 않다고 생각해요. 각 리그 간의 수준 차이는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올바른 자세만 가진다면 언제든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K3리그에서도 가장 환경이 어려운 우리 팀이 전북을 잡은 것처럼요.



-앞으로 선수로서 목표가 있나요?

이제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아직 프로 도전을 포기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양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언제 어떤 팀이든 다시 K리그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과거보다 지금 기량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어디서든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번에는 꾸준한 모습으로 후회를 남기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팬들이 ‘그래, 박청효라는 좋은 골키퍼가 있었지’라고 떠올릴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



PROFILE

생년월일 : 1990년 2월 13일

신체조건 : 190cm 78kg

포지션 : 골키퍼

주요 경력

경남FC-충주험멜-강릉시청-수원FC포천시민축구단-양주시민축구단



* 이 글은 KFA 기술리포트&매거진 ONSIDE 8월호 'THE INTERVIEW' 코너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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